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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샜다.
설레여서였다면 덜 부끄러우려나?
미루고 미루다 전날에서야 부랴부랴 9개월 간의 여정을 함께 할 배낭짐을 꾸리기 시작한 까닭이다.
정말이지 세상천지 나만큼 속편한 사람도 드물거야. 하하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준비가 덜된 시아의 배낭여행은 전야부터 분주할 따름이었다.
이노무 벼락치기 인생-_
될대로 돼라~ 운명에 몸을 맡기겠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호기롭게 떠들었다만은
입국 삼십분이 채 못되어 멘붕사태를 맞았으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뭐래니 ㅋㅋㅋ)
밤을 샜으면 출발이라도 일찍했어야 하거늘...
세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는게 좋다는 절친의 조언을 무시하려던건 아니다.
풀려가는 눈으로 늦장을 부리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아침 8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뿐이다.
내 배만큼이나 통통해진 배낭을 멘다.
이번 여행 첫 행선지인 베트남 하노이의 현지 날씨를 고려한 한여름 빈티지(라 쓰고 빈티라 읽는다)한 스타일까지 뽐내며 집밖을 나서니 자연스럽게 도끼병 환자가 된다.
내가 봐도 지금 내꼴에 시선이 모이는 이유가 십분 이해된달까.
공항철도 환승까지 하고나서야 마음이 좀 놓인다만, 역시나 이 구역에 배낭여행자는 나뿐이구나~
오전 11시 5분 발 비엣젯 하노이행 뱅기에 탑승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보름전에 황열병 예방접종을 위해 이미 공항 사전답사를 마친 이후였던 바, 탑승권 발행까지는 논스톱 코스.
고정은 아니지만 비엣젯은 최근 몇 달 사이 K구역을 체크인 부스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답사때는 운항시간이 아니어서 인포메이션에서 위치만 확인했었다.
K28-31 4개의 창구를 쓰고 있었음에도 또아리를 튼 대기인원은 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이때부터 여유부린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 ㅜ
그렇게 30분 만에야 탑승권을 받아들 수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현지 비엣젯항공 홈페이지에서 에코운임(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제약이 많은)을 지불한 여행자 시아에게 위탁 수하물은 허락되지 않는다ㅜ
수하물 추가 운임이 아까워 기내 7kg 제한에 맞추려 이것 빼고 저것 뺀 배낭의 무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8-9kg는 될것 같은데.
걍 부딪혀보자 맘 먹고 출국심사대로 궈궈.
지킬건 다 지키자며 꾸린 짐이라 지체없이 검색대를 통과하고 바로 향한 곳은 바로바로 스카이 허브 라운지.
애초에 면세점 쇼핑은 내것이 아니어라~ 가난한 장기여행자에게는 아이고 의미없다.
부러 발급받은 PP카드부터 써먹어야할 것이 아닌가.
기내식이 없는 점심비행을 대비해서 아점은 어떻게든 사수하자.
탑승수속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50분 남짓.
여객터미널에서 탑승동까지의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무쟈게 서둘러야 겠네.
이렇게 미션임파서블은 시작되었다.
디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하하하
여객터미널 4층에 위치한 SKY HUB LOUNGE
우엥 이게 웬걸. 여기서도 줄을 서야할 줄이야 ㅜ
앞선 이용객들의 카드에 문제가 있었는지 도통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하... 한시간만 일찍오는건데 ㅜ 라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그래도 보딩패쓰와 PP카드만 제시하면 어렵지 않게 입장을 허락받을 수 있다.
본인만 입장이 가능하고 추가인원마다 여기는 39불을 받는단다.
3시간동안 이용이 가능하다.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인터넷이고 휴식이고 뭐고 여행자 시아는 무조건 밥만먹고 철수해야하는 상황이다.
조거이 내 아점의 전부 ㅠ 저기에 아이스티 한캔이 끝 ㅠ
라운지를 누리리라던 포부는 시간과의 사투속에 무참히 시들어갔다.
조앞에 생맥주와 와인은 내것이 아니어라~
배를 채웠으니 이제 탑승동으로 이동할 시간.
128번 탑승구에 가기 위해서는 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하염없이 내려갔다가 셔틀트레인을 타고 탑승동으로 이동해야 한다.
보시다시피 비엣젯은 15분전 탑승 마감이며 탑승구까지의 이동시간을 고려해 여객터미널에서 최소 30분전에는 움직일 것을 권한다.
그 30분도 나같은 사람들의 마지노선.
셔틀트레인이 5분간격으로 운행되고 5-10분이면 탑승동에 도착한다.
탑승동으로 이동하면 여객터미널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모든 볼일을 마치고 움직여야한다.
하필이면 내가가야하는 이 탑승구가 맨끝에 있는 저기로구나.
나를 불안에 떨게한 마지막 관문이었던 탑승수속은 맥빠지게도 쉽게 통과였다.
기내수하물 무게제한에 걸릴까 노심초사했건만, 엄청 가벼운척 연기한게 먹힌건지 원래 잘 안잡는 건지 고도비만의 배낭도 문제없이 패스.
아, 참고로 배낭이나 기내용 캐리어에 보조가방을 함께 가지고 들어가는 정도는 허용이 된단다.
이렇게 탑승수속까지 마치고 내자리를 찾아서~
역시 늦게왔으니 뒷자리 ㅋ
날개 바로 뒤쪽이다.
작디작은 비행기에 3*3시트.
얼마나 많은 승객을 담으려는지 왜소한 여행자 시아가 앉았을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앞좌석과 무릎이 서로 안닿을라고 밀당을 하는 협소한 거리감을 자랑한다. 통로도 짐이 있다면 2차선 통행이 불가할 정도로 비좁다.
사진을 통해 미리 확인했지만 비엣젯 승무원의 유니폼은 참 발랄하다.
한국인 승무원도 있지만 찾을일은 없었다.
앞쪽에서는 승무원이 짐 올리는거 도와주더만 뒷쪽은 쳐다보지도 않네.
알아서 해야지 도리있나. 역기라도 드는 마냥 번쩍들어올려 배낭을 밀어넣고 겨우 비집고 들어가 착석한다.
5시간정도의 짧은 비행이라 창가 자리도 노 프라블럼.
들어갈땐 힘겨웠지만 어메이징한 전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후문.
미리 다운받아놨던 영어강의 오디오를 감상!하며 출발을 기다린다.
나는 왜 진작에 공부를 하지않고 떠나는 날에야 만학의 꿈을 이루려는 것인가.
거 참. 허허허
비행기는 예정된 출발시간 11시 5분에서 내내 빙빙 돌다가 30-40분을 넘기고서야 이륙한다.
생각보다 승차감은 좋은걸? 제주도갈때 탔던 진에어 때의 떨림(말그대로 진동)을 떠올린다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상공에서 바라본 인천공항은 너무나도 눈부셨다.
기내에서 안하던 셀카도 찍고 뽀샵질도 해보고 ㅋㅋㅋ
결코 영어강의 때문이 아니다. 밤샌탓에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물이라도 줄까 기다리다 포기하고 잠이나 청한다.
시트 젖히기도 민망한 공간에서 양심적으로 직각으로 잠을 청했지만 이보다 꿀잠이 없네.
단 한 번도 깨지않고 기장의 도착 안내 방송에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현지 날씨는 34도란다.
알고왔는데도 막상 저 밖에 나가려니 두려워진다 ㄷㄷ
두 번째 관문이다. 베트남은 출입국신고카드가 없다. 심지어 보안검색대에 직원 몇명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그냥 통과다 ㅋㅋㅋ
아웃티켓이 없는 여행자 시아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대 앞에 섰지만 얼굴만 확인하고는 도장찍어 보내주신다.
베트남은 한달 이내 입국한 적이 없다면 15일 동안 비자가 면제된다.
5월 22일까지 있을 수 있지만 18일에 동생가족을 인솔하러 라오스로 떠날 예정이다.
덕분에 베트남 북부만 여행하게 됐지만 어차피 보름만에 베트남 종단하는 것 자체도 무리다. 허겁지겁 다니는 여행은 내스타일 아님.
암튼 아이러니하게도 위탁수화물이 없던 나는 입국심사만 마치고 남들보다 빠르게 입국대기장으로 빠져나왔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원체크카드.
태국여행의 대세로 등극한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해외출금시 부가되는 국제카드 수수료(1%)가 없는 EXK카드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녀석이다.
태국뿐 아니라 현재 미국, 필리핀, 말레이시아,베트남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베트남과 태국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요량으로 오랫동안 놀리고 있었던 우리은행과 다시금 거래의 물꼬를 트게되었다능.
환전과 필수카드에 대해서는 여유날때 따로 자세히 포스팅하려고 한다.
암튼 입국대기장을 빠져나와 ATM기를 찾았다. 아직 베트남에는 우리원체크카드를 애용하는 여행자가 많이 없는지 정보를 찾기 어려웠지만 공항ATM기에서 인출했다는 말을 봤던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오른쪽 끝에 자리잡은 세대 중 EXK제휴 은행은 하나.
BIDV은행의 기계는 하필 요모양이었다.
살짝멘붕이 올뻔했다. 난... 안되는건가?
물론 달러를 챙겨오긴 했지만 공항환전은 비싸지 않은가.
국제카드 수수료가 없기땜에 대략계산해도 카드인출이 달러환전보다 이득이라 베트남, 태국에선 환전을 안할 생각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 반대쪽을 향했다. ATM이 더 있겠지 싶었던 거다.
다행이도 반대편 끝에도 세대의 기계가 있었다.
걔중에 가운데에 있던 Vietinbank에서 인출에 도전했다.
고맙게도 영어지원이 된다!
카드를 넣고 Withdrawl을 선택.
비밀번호는 6자리를 입력하게 돼있는데 당황하지 말고 기존 네자리와 뒤에 00을 붙여서 입력하면 된다.
예금인출이므로 Savings를 선택. 출금액은 2백만동까지 선택할 수 있다. 50만동짜리 지폐 4장이 출금됐다.
여행자 시아는 동남아 1일 숙식 예산은 만원으로 잡았으니 더 이상 인출하지 않기로 했다.
설명만 보면 정말 베테랑같아보이지만 사실 오늘의 사고는 여기서 터졌다.
혼자 뱅기타고 오는건 하나도 겁안나더만 돈이걸린 이자리는 긴장의 도가니.
해외ATM 사용이 익숙치 않은 여행자 시아는 이 대목에서 무쟈게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히 문제없이 내뱉어진 현금을 보는 순간 긴장이 풀렸고 돈과 영수증을 챙기면서 이돈을 빨리 복대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직행했다.
돈을 주섬주섬 챙겨넣고 당분간은 쓸모가 없어진 체크카드도 깊숙히 숨겨놓으려고 했던 그때!!
그때서야 난 알아차렸다. 내 수중에 카드가 없다는 것을~
가방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보이지않아~
그 순간 화장실을 박차고 나와 ATM을 향해 달렸다. 것도 10키로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ㅋ
역시나... 거기에 카드는 없었다.
2차 멘붕에 휩싸였다. 이번 멘붕은 핵폭탄급이었다. 카드를 뽑았는지 아닌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잠자던 뇌가 활성화되고 3차멘붕.
당장써야할 돈은 남겨놓으려고 화장실 선반에 잠시올려두었던 50만동짜리 지폐 한장이 떠오른 것이다.
또 뛰었다. 화장실을 향해 ㅋㅋㅋ
'진짜 정신못차리니 시작부터.'
화장실로 향하는 그 짧은 거리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천만다행으로 돈은 그자리에 있었다. 이미 ATM기를 찾아 헤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였고 입국대기장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화장실이었던게 컸다.
놀란가슴은 일단 한번 쓸어내렸지만 이제 문제는 카드였다.
기계근처에 자리잡은 환전소 직원에게 다가갔다.
영맹인 여행자이씨의 발음을 당연히 못알아들었겠지 ㅠㅠ 환전먼저 처리하겠단다 ㅜ
마침 그때 환전을 하려던 분이 한국인이었다는건 천운일까?
먼저 무슨일이냐고 물어봐주었다.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분은 직접 직원에게 그 상황을 대신 전해주셨다.
영어가 약한 여행자 시아에게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인출한 기계는 옆의 환전소 담당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감사인사를 전하고 옆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안 사실이지만 각각의 은행ATM기 옆에 각각의 은행환전소가 붙어서 운영되는 거였다.
좀만 유심히 봐도 알수있는 사실이었을텐데 급하니까 보이지 않았던거지.
앞서 한국분이 직원에게 상황 설명하는걸 봤던터라 이번에는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이런일을 많이 겪었던지 잠시 기다리라며 열쇠를 들고 기계를 향한다.
이윽고 카드를 꺼내들고 직원이 돌아왔다. 돈을 챙기느라 기계에서 카드를 뽑는걸 잊었던 모양이다.
여권확인하고 카드는 바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가만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정신놓고 인출기에 카드 꽂아놓고 나왔다가 다시 찾으러갔던 경험이 몇 번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구나.
여행의 수많은 위험을 조심해야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중에 제일 조심해야하는 건 나라는 걸 깨달은 시작이었다.
잊고있었지만 5년전 인도여행에서도 내 실수로 잃어버릴뻔한 복대를 숙소 직원이 쫓아와서 돌려준 사건을 생각하면 문제는 나다.
그리고 다행히 그자리엔 날 도와줬던 사람들이 있었고 덕분에 난 그 어떤 손해도 입지 않았으니 복이라면 복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어떤의미가 될지 어떤걸 보고 느껴야할지 아직까지 아무것도 정한 건 없지만 오늘 한가지는 느꼈다.
쫓기지 말고 조급함에 한꺼번에 모든걸 하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라도 집중할 수 있는 진득함이 나에게 필요하다는거.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그러했지만 스스로 사고를 치면서도 또한번 경각심을 느끼게된다.
그래서 오늘일이 나에겐 고맙다.
아, 이젠 졸려서 안되겠다.
공항에서 여행자 시아의 첫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 xuan의 집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내일 일찍돌아와서 기록하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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