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저에겐 병이 있습니다.
한국 코미디 불신증이라고나 할까요.[자매품으로 한국 공포 불신증도 있습니다.]
조폭 아님 섹시.
한국 코미디하면 위의 두가지가 떠오르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닐겁니다.
'코미디가 웃기기만 하면 된거 아냐?' 라며 웃어넘기기엔 21세기의 10년이 지난 지금, 관객의 수준은 고품격 하이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허나 한국 코미디영화의 수준은 몇 년 째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을 뛰어넘지 못한 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영화들조차 개인적으로 그리 유쾌하게 보진 않았던 바, 저의 한국 코미디 불신증은 거의 선천적이며 불치에 가까웠달까요.
저의 이 신념에 가까운 병은 06년 상반기 <미녀는 괴로워>같은 참신한 처방에 호전되는 듯 했지만 이후 수많은 돌팔의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죠. 심지어 예고편이 전부인 낚시질에 속아 울던 세월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호재가 있었으니 바로바로바로 08~09 겨울 시즌을 강타한 <과속 스캔들>!
성실한 이야기 구조는 예의 코미디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고 미혼모 등의 무거운 주제를 가볍지만은 않게 하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지요.
△ 관객 뿐 아니라 200만을 밑돌던 롯데 배급에 대박 웃음꽃을 터뜨려준 작품들.
이 여세를 몰아 <7급 공무원>까지 가세하며 한국 코미디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그 오랜 불치병을 딛고 극장에서 맘놓고 웃고왔다는 기쁨에 한국코미디의 역사까지 들먹여가며 이 영화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1.
이나영이 코미디를를를?
제목부터 요상한 이 영화, 나의 여신님 이나영이 아니었다면 쳐다나 봤을까요?
이 영화, 기대 안되는 이유라면 수도 없지만 코미디로는 아직 검증이 안된 배우들이 수두루 빡빡에 신인감독이라는 패널티까지.
덕분에 궁금증은 폭발했으니 사전 관람포인트는 자연스럽게 이나영의 코믹연기와 제목의 출처가 되시겠습니다.
미리 총평부터 하자면
미쳐 준비하지도 못한 채 쉴 새 없이 터져주는 포인트마다 급히 웃다 사레들리고 목이메여 마른기침이 떠나질 않았고, 관람전 든든히 채웠던 위장은 배꼽 실종을 동반한 격한 복부의 요동으로 인해 관람후 극심한 허기에 시달렸다는 후문입니다.
2,
그렇담... 이 영화 왜 웃기나!
첫번째 궁금증 부터 짚어보죠. 이나영의 코믹연기는?
△ 마냥 사랑스러운 그녀. 남장 마저도 완소급.
열심히 망가져가며 분전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그녀는 그냥 자체발광이라 뭘해도 이쁘고 삐죽거리는 입모양 마저도 사랑스럽습니다.
심지어 이나영이 분한 손지현의 숨겨진 아들 유빈역의 김희수 어린이보다 작은 머리 사이즈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이건 단연 희수군의 머리가 크다기 보다 나영언니의 머리가 심각하게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뭐 대략 이나영이 안구정화를 담당했다면 웃음담당은 따로 있습니다.
K4!![공고롭게도 모두가 김씨네요.]
2010의 발견이라해도 손색이 없는 김흥수.
일찍이 시트콤을 통해 코믹연기를 갈고닦은바 거기에 깊이와 내공을 더해 한층 절도있는 까불거림을 선보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디테일한 표정과 리액션에 목적의식적[그의 직업이 자동차 외판원이라는 사실에 주목합시다.] 진지함은 우정출연임에도 불구하고 등장마다 큰 웃음을 담당합니다.
이는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주연작이었던 <나쁜 놈이 더 잘잔다>에서 보여줬던 매력과는 또 다른 모습이라 그 가능성이 더 기대되기도 합니다.
로맨스를 담당하는 우리의 남주인공 김지석도 <국가대표>에서의 조연의 설움을 단번에 잠재울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해냅니다.
어리버리 한듯 엉뚱하면서 순정파이지만 감당하기 힘든 사실에 한번쯤 흔들리는 보통의 남자 캐릭터를 잘 소화해 냅니다.
그 외 김희수의 개인기는 <과속스캔들>의 왕석현 못지 않은 포스를 과시하며,
<거북이 달린다>, <청담보살>등을 통해 검증된 김형사 역의 김희원의 넉살만땅 코믹연기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 웃음은 우리가 책임진다. K4 김희수, 김흥수, 김지석, 김희원(사진이 없네요;ㅁ;)
두번째. 그들의 앙상블.
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한도전 시청자라면 알법한 아어이다 개그. 바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코미디의 리듬감을 살립니다.
각자의 직업을 활용한 디테일한 소품개그[지석과 흥수가 대표적]라던지, 집요한 관찰 혹은 선천적 능력이 만들어낸 전문성이 살아있는 개인기라던지[요건 나영언니보다 희수군이 더 잘해요], 어거지를 부리지 않고도 깔끔하게 웃음포인트를 잡아내는 연출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3.
그렇다고 이 영화가 완벽하다는 건 아닙니다.
이쯤에서 소재를 들먹이지 않을수가 없네요.
언제부턴가 한국 코미디의 화두는 민감한 소재를 끌어들여 어떻게 얼마나 잘 버무려내냐가 된 것도 같습니다.
성형, 미혼모 등을 거쳐 성전환[스포일러라고 하기엔 이미 알려진 내용인듯]에까지 다다랐네요.
물론 이런 부분은 한국영화가 일궈낸 일종의 성과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아빠는...>는 그런측면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보여집니다.
간간히 손지현의 과거를 보여주지만 인물의 내면보다 상황설명정도에 초점이 맞춰진 부분이 좀 아쉽죠.
그 혹은 그녀가 성정체성의 혼란으로 겪었을 부침들에 대해서는 '과거엔 내가 없었다'는 류의 대사로 일축합니다.
성전환자의 사랑을 보통의 이성애자들의 사랑보다 조금 힘겹지만 극복가능한 장애 정도로 그려내는 건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과속 스캔들>이 대부분의 기구한 처지의 미혼모나 사생아들을 외면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평가와 같은 맥락일 텝니다.
그러나 민감한 이야기를 수면위로 올렸다는 것, 진지하게 고민해볼 여지를 던져줬다는 정도로도 의미는 있겠습니다.
△ 핸섬했던 과거 싹 잊고, 이젠 로맨스가 오나 했더니...
잊고 오고, 그런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한가지 더 꼬집어보자면,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는 훌륭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탄탄한 캐릭터를 방증하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어찌보면 억지 감동이나 눈물골을 만들지 않아 담백한 맛은 있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인물들의 상처를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흥이 없었던게 더 맞겠다 싶더라는 거죠.
4.
가볍게 웃고 즐긴 영화였는데 막상 풀어놓으니 할 말이 참 많았네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한가지 팁이라면 이 영화를 제작한 하리마오 픽쳐스가 <7급 공무원>을 제작했던 신생 영화사라는 점.
제 멋대로 이 영화도 대박예감이라 난생 처음 영화사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제목의 비밀은... 영화를 보고나면 해결됩니다요.
힌트라면 어른의 문법으론 이해가 안되지만 아이의 문법이라면 가능한 말이라는거.
|
'Culture > 영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랑프리> 굳이 '말'이 아니어도 되었을 로맨스였구료. (0) | 2010.09.16 |
---|---|
[꼬마 니콜라] 원작을 다시 읽어야 겠어요. (0) | 2010.01.23 |
[더 로드] 나에겐 올해 첫 영화, 인생을 보여 준 영화 (0) | 2010.01.09 |
[C+ 탐정] 스릴러와 공포의 경계에서 줄타는 경지 (0) | 2009.12.18 |
[산타렐라 패밀리] 한국 코미디가 배워야할 리듬감!! (0) | 2009.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