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으로 정처없고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도통 극장엘 갈 시간이 없었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개봉한지는 꽤 지났지만 한번 쯤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 보려고 합니다.
헐리우드 작품이 아니라는 패널티로
이완과 에바라는 엄청난 앙상블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퍼펙트 센스]입니다.
인간의 오감이 모두 사라지는 전염병. 생각만해도 끔찍한 상상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인류가 시각을 잃은 세상을 오직 한명만 눈을 뜬 시점에서 참담하게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 영화도 있었습니다.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가 공포에 휩싸이는 영화도 많죠.
이 영화는 전염병의 두려움으로 인한 세상의 어두움과 공황 그리고 그에 적응해가는 인간의 발군의 생존력을 함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특별함은
이제 시작한 연인이 이 사태의 한복판에서
사랑의 감정을 감각의 상실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완성되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데 있습니다.
바이러스 연구자인 수잔(에바 그린 분)은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능력있는 요리사 마이클(이완 맥그리거 분)은 여자도 마음먹은대로 요리해내는 능력자지만 사랑은 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우연히도 그 둘은 만나게 되고 경계하던 그녀도 그의 능청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립니다.
소히 썸만 오가던 그 즈음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후각을 잃기 시작합니다.
수잔도 보고를 받고 연구팀에 합류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습니다.
다만 급격한 우울을 겪고 나서 후각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해냅니다.
그날도 무력하게 귀가한 수잔에게 마이클은 직접 만든 요리를 권합니다.
이 남자 껄떡대는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황홀한 맛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수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이지적이고 냉정하기만 했던 그녀가 극도의 우울에 빠지고
곁에서 위로하던 마이클에게 침대를 허락합니다.
이내 수잔은 후각을 잃고 물론 마이클도 오래지 않아 후각을 잃죠.
이렇게 서로의 우울을 달래주고 나서 그 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후각을 잃었지만 걱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들 곧 제자리로 돌아가 삶을 지켜갑니다.
마이클은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향신료가 듬뿍 함유된 음식을 만들면서요.
하치만 홍역을 앓고 안정되던 시간들도 얼마 못가 이번엔 모든 사람들이 미각을 잃어버립니다.
급격한 공포와 허기를 앓고 나서 말이죠.
이제 사람들은 비록 탄수화물 덩어리만을 먹을지언정 분위기와 대화를 즐기기 위해 식당을 찾습니다.
이젠 슬슬 시력까지 잃을 걸 대비해 눈을 가리는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됩니다.
수잔과 마이클도 그 와중에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번에는 분노로 시작해서 청각을 잃는 바이러스가 창궐합니다.
극도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과 폭언도 불사하게 하죠.
폭력으로 혼란에 빠진 도시는 이제 통제의 대상입니다.
수잔의 빌라가 격리되면서 마이클은 잠시라도 자신의 집에 기거하길 권하죠.
마땅한 대안이 없던 그 둘은 결국 마이클의 집으로 향합니다.
차 안에서의 그 짧은 이동 속에서 그 둘은 똑똑히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과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도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그 둘은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곧 그렇게 될 자신들이 두려웠을까요...
하... 그런 생각도 할 겨를 없이 도착하자마자 마이클이 격한 분노를 터트립니다.
빈정대기로 시작해서 폭언 그리고 폭력.
수잔은 이게 분명 전염병에 의한 증상임을 알고 있을텐데
마이클의 폭언은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깊은 상처로 남고 그자리에서 뛰쳐나갑니다.
이내 마이클의 분노는 잦아들었지만 이미 수잔은 떠나고 없습니다.
청력도 잃었습니다.
갈 곳 없던 수잔은 연구실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미 연구실도 폐허.
마음을 안정시킬 여유도 없이 상처는 분노가 되고 그녀는 빈 사무실을 거침없이 휘져으며 참을 수 없던 분노를 터뜨려냅니다.
마이클은 자신의 폭언으로 떠나보낸 수잔을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청력을 잃은 그녀는 얘기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수잔은 아수라장 속에서 이내 평온을 찾고 마이클과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도 행방도 모르는 채로 그 둘은 좋았던 그 시간들을 쫓아 각자를 찾아 나섭니다.
엇갈림은 있었을 지언정 이 둘은 맨 처음 만났던 그자리에서 서로를 다시 마주합니다.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시각마저 잃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 이 자체도 사랑이야기지만
급격한 감정의 변화와 이어지는 감각의 상실... 이 또한 사랑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우울, 불안, 허기, 분노... 사랑을 하면서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 양면의 감정들...
연애를 하면서 의사소통의 부재로 우울을 겪어 보기도 했고
이 사람이 떠나가 버릴까 하는 불안에 휩싸인 적도 있고
관심에 목말랐던 적도 있고
이 모든게 원망이 되고 화가 되어 나도 모르게 줍지 못할 말들을 퍼붓기도 했었죠.
반대로 상처받기도 하고요.
Life goes on...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우린 모두 적응하니까요.
그리고 계속 사랑하니까요.
'Culture > 영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함도] 나도 할 말 많다 - 스포주의 (0) | 2017.07.28 |
---|---|
[PiFan 로드쇼] 일대종사 관람기 (2) | 2014.04.16 |
[영화리뷰]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0) | 2014.04.03 |
영화는 영화다 <노아> (0) | 2014.03.25 |
[300 vs 적벽대전] 영화로 보는 동서의 전쟁 (0) | 2014.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