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최신작 [일대종사]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이하 부천영화제) 로드쇼를 통해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심지어 무료+_+
피판 로드쇼는 7월에 열릴 18회 부천영화제에 앞선 일종의 사전 행사.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스크린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퇴근하자마자 머나먼 부천만화박물관까지 출동. 겨우 영화시간에 맞춰 표를 받고 착석.
참고로 만화박물관의 상영관은 우리가 익히 찾는 멀티플렉스와 구조가 살짝 달라서
앞쪽에 앉는 것이 더 관람에 적합하다는 것이 자그마한 팁이라면 팁.
부천영화제 김영빈 집행위원장의 부천영화제 소개와 오늘 관람할 일대종사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듣고나서야 스크린의 불이 켜졌습니다.
알려진대로 [일대종사]는 엽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개봉한 엽위신 감독의 [엽문]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당대 최고의 무술인이자
이소룡이 최고라 꼽은 스승.
한 문파에서 뛰어난 실력과 업적으로 위대한 스승이라 불릴 자격을 가진이에게만 붙여진다는 칭호인 일대종사.
황비홍, 곽원갑, 엽문 정도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대종사입니다.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6년의 고증과 기획, 3년의 긴 촬영끝에 완성되었습니다.
워낙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방대한 분량의 촬영을 하고 편집과정에서 과감하게 버려내기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만의 연출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 모양입니다.
첫번째 빗속의 떼싸움씬만 50일을 촬영했다고 하니 얼마나 지독하답니까.
역사상 실존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어느정도 갖춰진 시나리오는 필요했겠으나 결론적으로 왕가위는 자신만의 영화스타일을 고수해냅니다. 이건 본격적인 영화 얘기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요.
제작이 3년까지 이어지면서 루머가 끊이지 않았죠.
양조위의 무술이 늘지 않아 촬영이 늦어진다는 설부터 덕분에 장쯔이의 분량이 늘어났다는 소문까지.
왕가위의 영화에 항상 함께했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이 채 완료되지 못한 시점에 타개하면서
걸출한 촬영감독들이 영입되었지만 특유의 연출스타일을 견디지 못하고 숱하게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말많고 탈만던 왕가위의 수년만의 복귀작은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영화는 웅장한 BGM과 그로테스크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채우며 제작진과 출연진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리고 시작은 엽문의 클로즈업.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무협영화의 스타일과 공식을 무너뜨립니다.
같은 인물을 다룬 엽위신의 엽문만해도 궁극에는 일본의 적과 대련해서 중화의 자존심을 세우며 마무리하는 카타르시스가 있건만,
왕가위는 단지 엽문을 통해 쿵푸의 정신을 훑어갑니다.
“쿵푸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지는 자는 수평이 된다. 최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첫장면에서 클로즈업된 엽문(양조위 분)이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르게 읊조리는 이 대사는
영화 마지막에도 그대로 읽혀집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결투씬에 소홀한 것만은 아닙니다.
첫 결투 장면은 앞에 언급한대로 촬영만 50일.
모든 결투씬이 멋지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일대종사 최고의 결투씬은 다름 아닌 궁이(장쯔이 분)와 마삼의 기차앞에서의 설 중 대결씬.
비장미와 긴장감 가득한 음악과 눈발이 어우러져 소름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다시 돌아와서 왕가위의 일대종사 얘기를 해볼게요.
엽문이라는 실존 인물을 다뤘지만 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대등하게 배치하면서
묘한 멜로라인을 형성해냅니다. 이것이 멜로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말이죠.
엽문은 아내 장영성(송혜교 분)에 대한 의리와 본인이 생각한 쿵푸의 정신을 올곧이 지키며 영춘권을 전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일제의 침략으로 생계를 위해 팔았던 코트의 단추하나를 떼어서 간직했던 건 마지막 자존심에 대한 상징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궁이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여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후계자를 남기지도 못하는 삶을 지키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이렇게 당대의 영웅들은 각자의 것을 지켜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듭니다.
인생의 허무함, 무상함.
기간의 왕가위가 우리에게 던졌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공통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겠네요.
일대종사 역시 왕가위에게는 그가 그려내던 많은 멜로의 다른 방식이었달까요.
기존 무협영화와 다른 서사방식으로 지루하다고 평가절하되기엔 좋은 구석이 너무나도 많은 영화였네요.
이상하게도 영화보는 내내 미쟝센도 미쟝센이지만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안정된 앵글들이 신기해서 거기에도 집중이 되더라는.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요.
아... 할말이 너무 많아서 주저리 정리못하다가 관람 10일이 지나서야 하는 포스팅.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Culture > 영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함도] 나도 할 말 많다 - 스포주의 (0) | 2017.07.28 |
---|---|
Life goes on... <퍼펙트 센스> (0) | 2014.04.27 |
[영화리뷰]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0) | 2014.04.03 |
영화는 영화다 <노아> (0) | 2014.03.25 |
[300 vs 적벽대전] 영화로 보는 동서의 전쟁 (0) | 2014.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