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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2015 세계일주 in 네팔

[세계일주 D+88-91] in 네팔 카트만두 : 내가 찾은 완벽한 공동체

by 시아-★ 2015. 8. 10.
8/2-5


드디어 우리는 고아원에 입성한다. 

일정이 꼬이고 꼬여 카트만두 도착 6일만에 들어가는 봉사활동. 비자일수와 다음 여행일정을 고려해 4일간 아이들과 생활하기로 한다. 바로 들어올수만 있었다면 좀더 아이들과 함께한뒤 포카라 여행도 여유롭세 즐길수 있었겠지만   지난이야기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암튼 그리하여 우리가 산골마을 학교 급식시설 세팅 대신 급하게 나마 섭외한 봉사지는 카트만두 시내중심에서 4-5키로 정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고아원이다.

목사님 부부  둘이서 25년째 운영하고 있단다.


자제들은 이미 모두 결혼해서 외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여기서 생활하는 초등학생부터 20대초반까지 40명 조금 넘는 아이들 모두가 이들의 자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목사님 내외를 부모처럼 따른다.


봉사랍굽쇼?

사실 봉사활동이란  자체가 어색 돋아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시아 생각하고 하고자 했던 카트만두에서의 경험과 상통하지 않을뿐더러 실제로도 그러했다.


굳이 대체할 다른 단어를 다면 나눔과 소통?



여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설을 경험하지도 눈으로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서도 일부 시설에선 봉사와 더불어 기부금을 내야하는 곳이 적지 않단다. 봉사라고는 하나 엄밀히 식솔하나 느는셈이니 나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외부인이 방문하면 전원소집돼서 착착 무릎꿇고 앉아 손님을 맞으며 비보잉  준비된 장기자랑을 선보이기도 한다니 듣기만해도 안쓰러운 현실이다.

세련된 구걸 다름아니다.

물론 그런 시설일 수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게 사실이니 외면할  없는 현실이다.


이런 얘기까지 들어놓으니 우리가 나흘간 동거동락한  작은 공동체가 얼마나 이상적인 공간인지 더더욱 실감케된다.

초창기에야 엄마(사모님)가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무릎통증으로 고생도 많으셨다는데 장성한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때론 공부도 봐주면서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알아서 가사일을 나누고  와중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이들 얼굴에선 그림자를 찾아볼수가 없다. 


내가 저때 말이지... 주는 밥먹고 세탁기가 빨래해주고 공부와 숙제는 항상 내일로 미뤘더랬지. 심히 부끄러워지는 흑역사 


놀라운건 초딩들 교과서가 국어말고는 모두 영어로 인쇄돼있다는 .

어마어마한 조기교육이다.


목사님 부부는 애초에 우릴 봉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입장에선  부려주고해 마음이 편할텐데 시종일관 손님을 대하듯 오히려 보살핌을 받게된 입장이었달까.


어차피 아이들은 자립적으로  공간에 필요한 일들을 수행한다. 우리가 나설 틈이 없다... 외려 아이들이 우리를 살피며 필요한걸 챙겨주니 세가 역전이다. 

우리가 카트만두에서 봤던 흔한 로컬의 비매너는 여기에 없다 


이렇게 된이상 괜히 얼쩡거리며 일거리를 찾아다녀보기도 하고 ㅋㅋ 이도 여의치 않을땐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주력했다. 어린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우리를 따라주었고 이에 보답하려 늦깎기에 몸쓰는 놀이에 함께하기도 하고  역시 아이들은 무한체력이여  한번시작하면 끝도 없어 항상 우릴 방전시키곤 했지 


고딩 이상의 친구들과는 문화를 교류하며 작잖은 추억을 만들었다.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직접 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들에게 이번 대지진은  상처임이 분명하다.

천만 다행인건  시설이 위치한 마을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는 .

하지만 아직 여진이 남아 어린아이들은 가건물만도 못한 바깥 공간에서   밖에 없다는 .

만에 하나 밤사이 지진이 일어나면 어린아이들은 대피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3박 4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무 많은 추억과 교훈을 얻게되는 시간이었다.

봉사활동이라기보단 또다른 의미의 카우치서핑을 하고 나온 느낌이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배우고 느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돈주고 살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엄마, 아빠같았던 목사님 부부와 아이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던간에 말이다^^




에필로그


원미씨와 시아를 카트만두에서 진퇴양난에 빠지게했던 히든 멤버 정우씨의 사연은 이러했다.

정말이지 직접 들으면서도 믿기힘든 그의 스토리. 


애초에 지난 14일부터 먼저 인도여행을 마치고 28일에 바라나시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기로 했던 정우씨는 인도 입국부터 거부당했다.

여행을 즐겨다닌다는 그의 친구 모씨가 요즘 인도는 미리 비자받지 않아도 바로 들어갈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확인도 하지않고 비행기에 오른 까닭이다.

물론 1달 이내 짧은 여행을  계획이라면 미리 전자비자를 신청한뒤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도 있다.


결국 비자문제로 입국거절당한 정우씨는 바로 중국으로 튕겨나갔단다. 

인도행의 좌절로 바로 카트만두로 넘어온 그는 28일까지 그냥 기다릴수만은 없다 판단하고 급히 24일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등반을 감행한다.


참고로 카트만두-포카라 이동만 하루는 잡아야되는 구간. ABC 트레킹은 기본 일주일이 소요되는 코스다.

애초에 28일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할수 없는 일정이었다.

본인이  늦더라도 이미 얘기가 되었으니 둘이라도 먼저 봉사를 시작하고 있을줄 알았단다.


암튼 기본적으로 히말라야에서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건 당연지사. 그가 산행하는 동안 연락할 도리가 없는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가족들은 소식이 끊긴 정우씨가 염려되어 수소문  포카라 산사 뉴스를 접했단다.

다음달까지 이어질 네팔의 우기. 나중에 관계자에게 들으니  시기에 산사태는 흔한일이란다. 물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산사태가 비일비재한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기에 산행은 고달픈 일이라 추천하진 않는 분위기.


대단한건 산사태 소식에 바로 티켓끊고 네팔로 달려온 아내의 결단.

실제로 정우씨는 베이스캠프를 찍고 하산하던중 산사태를 만나 잠시 발이 묶였단다.

산사태 현장에서 시신수습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니 이보다  파란만장할수가 없다.

하산  그는  멘붕상황에 직면한다.

아내는 네팔에서 울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봉사단원들은 본인때문에 일정이 미뤄져있었다.


정우씨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이 먹을 과일을 사가지고 3일차되던날 함께 방문해왔다.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가지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여인네의 네팔일정을 사면초가로 밀어넣은 철없는 남편 ㅋㅋ의 웃지못할 스토리.

인도 입국 실패부터 트레킹 결정까지...

함께 봉사시작하기로 날짜까지 함께 조율했던 단원들에게 단한번도 이런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던 무책임함은  얄밉지만. 하하하 그저 웃지요.